한국 경제의 최대 뇌관인 가계부채(대출)가 3년 6개월 만에 국내총생산(GDP) 아래로 떨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가계부채는 소비위축을 불러오고, 이는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신(新) 3고(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가계부채 감소는 반가운 소식이다.
2021년 하반기 이후 기준금리 인상과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빅 거품’이 다소 꺼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안정적인 수준의 가계 부채 비율에 이르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높아지고 있는 서민·자영업자 등의 연체율도 고민거리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98.9%로 집계됐다. 2020년 3분기(100.5%) 100%를 넘은 이후 처음으로 100% 아래로 내려왔다. 가계 부채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22년 1분기(105.5%)보다는 6.6%포인트 낮고 1년 전(101.5%)과 비교하면 2.6%포인트 내린 수치다.
가계부채 비율 100%는 통화·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목표에서 1차 저지선으로 여겨진다. 작년 8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어가면 경제 성장이나 금융 안정에 제약이 되므로 100% 이상인 비율을 점진적으로 80%까지 낮추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조사 대상 34개국 중 여전히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았다. 한국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이후 4년째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계 부채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채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주요국에 비해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큰 것이다.
가계부채 감소와 별개로 가계부채의 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여파로 상환능력이 크게 떨어진 서민·자영업자 등의 연체율 급등세가 심상찮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1개월 이상 연체된 개인사업자(소호)대출 총액은 1조356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9870억원 대비 37.4%(3690억원) 증가한 수치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이 크게 뛰며 은행의 연체율은 지난 2월 0.51%까지 올라 2019년 5월 이후 약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급전’이 필요할 때 자주 쓰이는 카드론·현금서비스 등 카드사 연체율은 지난해 말 기준 1.63%로 전년 말(1.21%)보다 0.42%포인트 상승해 2014년(1.6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 연체율도 3.41%에서 6.55%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5.8%포인트)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한계차주를 위한 서민금융상품의 연체율(대위변제율)도 지난해 20%대를 웃도는 등 큰 폭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60세 이상 차주의 부채가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7%에서 20.4%로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빠른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고령층의 부채 비중은 계속해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 초점을 맞췄던 금융당국의 정책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가계부채 연착륙에 총력전을 펴야 할 때다. 가계부채는 가계, 금융, 부동산 등 여러 부문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다.
가계부채가 커지면 지금의 고금리 상황에서 가계의 원리금·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고, 이에 따라 소비지출이 줄면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 가계부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부동산 관련 대출이다. 향후 부동산 경기가 반등하면 가계 부채 비율도 다시 오를 수 있다. 따라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등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추가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
또 부채 총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과 함께, 한계에 몰린 취약 차주(돈을 빌린 사람)에 대하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 한은은 작년 말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높은 대출금리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영업자의 소득 여건 개선이 지연되고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경우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부실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고금리 속에서 긍정과 부정의 신호가 혼재하는 지금은 모든 경제주체가 부채 관리에 집중할 때다.
정해균 편집국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