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라톤' 세대차별의 무기가 되었는가?

등록 2024.04.08 06:00:00 수정 2024.04.08 06:00:04

 

지난 2017년 당시 나는 창업 후 7~8년을 쉼없이 달려온 데다 창업과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부모님 두 분의 투병이 겹치며 몸과 마음이 지치고 망가져 있었다. 2017년 그날도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직원의 면담 아닌 통보를 받고 또 한번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당장 고객사에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대체인력은 어떻게 구하나 등등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한 맘으로 탄천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바람을 가르며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무리 '달리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나와는 다른 그들의 모습이 참 여유롭고 좋아 보였다. ‘나도 달리기나 해볼까?’ 인터넷으로 동네 달리기 모임이 있는지 찾아보다 ‘달리기교실’이라는 것이 매주 열린다는 공지를 보게 됐다. 그 달리기교실은 지역 내 마라톤클럽에서 운영하던 모임으로 이를 계기로 나는 클럽에 정식 가입하고 마라톤 풀코스도 몇 차례 완주하며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됐다. 힘들고 괴로웠던 일도 달리기를 하다보면 별 것 아닌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여겨졌고, 꽉 막힌 문제도 달리다보면 의외의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도 해 좋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라톤은 젊은 층에게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오랜 기간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남아있었다. 실제 우리 클럽 또한 50대 이상의 중장년 층이 주축을 이루었고 40대 정도면 청년 축에 속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MZ세대’(밀레니엄+Z세대) 사이에서 달리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클럽’이 아닌 ‘크루’라고 칭하며 빨강, 노랑, 형형색색 화려한 중장년층의 유니폼과는 달리 올블랙의 상의와 레깅스 그리고 흰색 삼선 아디다스 롱 양말과 헤어밴드로 한껏 멋을 낸 MZ세대들은 죽기살기로 달리는 우리들과 달리 여유롭게 음악도 틀어가며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달리기를 즐겼고 우리 클럽에도 MZ세대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세대를 아울러 함께 달리며 마라톤 제2의 부흥기가 오는구나 싶어 반갑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마라톤이 MZ세대를 공략할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챈 메이저 마라톤 운영사들 즉, 국내 3대 마라톤대회를 운영하는 언론사들이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며 참가비를 대폭 인상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모 언론사는 홈페이지에서 받던 참가신청 접수를 앱에서만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변경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앱을 이용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지만 60, 70대 이상의 시니어들 중에는 앱을 다운받고 앱에서 결제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아마추어 마라토너라면 연례 행사로 참가하는 그 대회의 참가신청을 아예 포기하거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참가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 참가신청 접수를 받은 그 대회 측에서는 앱 접속이 폭주해 서버가 다운되는 난리 속에서 풀코스 1만5000명, 10km 2만 명의 접수를 4시간 만에 완판시켰다고 자랑하는 기사를 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과 미디어가 진화하며 참가신청 접수를 앱으로 받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중장년층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에서 굳이 일정 수준의 유예기간도 없이 혹은 홈페이지 접수를 병행할 수 있음에도 참가신청 접수를 앱으로만 국한해 진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항간에서는 젊은 세대로 대회를 세대교체 하고자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다시 호시절을 만나 마라톤이 개인의 건강관리 차원을 넘어 세대교류와 소통의 중요한 매개체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그런데 이 좋은 기회를 굳이 편의성,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놓쳐버리는 것이 과연 정말 효율적인 일일지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더구나 그 언론사들을 먹여 살리는 주 독자층은 중장년층이 아닌가?!

 

 

임현정 무버먼한국 & 꺼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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