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진 'CBDC 상용화 시계'...한국은 4년째 제자리걸음?

등록 2021.11.10 10:54:27 수정 2023.05.19 08:11:38

중국·나이지리아 등 '상용화'...한은 2년내 '도입여부' 결론
법 정비·국민 이해 등 '갈 길 멀어'..."시의성·효율성 있는 결정 중요"

 

[FETV=권지현 기자] "2년 안에 CBDC 도입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지난달 15일 국정감사에서)

 

전세계 곳곳에서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야 모의실험에 나서고 학계의 의견을 듣는 등 아직 도입 여부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다. 도입을 결정하더라도 법 정비와 국민 이해도 제고 등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CBDC가 민간 암호화폐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의성'과 '효용성'있는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이달 18일 오후 'CBDC 관련 주요 이슈 및 중앙은행의 과제'를 주제로 지급결제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로 했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를 말한다. 공신력을 지닌 법정 통화로서 한국은행권·주화 등 실물화폐와 동등한 교환 비율이 적용된다.

 

한은 관계자는 "CBDC 관련 학계 등으로부터 의견을 듣기 위해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며 "당일 논의된 내용을 현재 진행 중인 CBDC 모의실험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CBDC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라도 전문가의 견해를 듣기 시작한 것은 다행일지 모르나, 한은이 2017년부터 CBDC 관련 연구를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4년 만의 첫 걸음'이다.

 

최근 각국은 민간 암호화폐의 대항마로 CBDC 발행을 적극 검토·추진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해 65개국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CBDC 도입을 진행·준비 중인 국가는 전체의 86%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실험' 중인 나라는 60%, '시범운영(파일럿 테스트)' 중인 나라는 14%였다.

 

특히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중국 CBDC인 디지털위안화는 이달 초 사용자 1억4000만명을 돌파하며 현재 빠르게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중국인 11명 중 1명이 디지털화폐를 현금처럼 쓴 셈이다. 지난해 디지털위안화 시범운영에 나선 이래 가파른 행보다. 중국 정부는 내년 2월에 열리는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위안화를 공식 통용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향후 지구촌이 향하게 될 '현금 없는 사회' 관련 디지털화폐의 글로벌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해 1월부터 영국, 스웨덴, 스위스, 유럽중앙은행(ECB)을 포함한 6개국 중앙은행과 CBDC 연구를 공동 진행, 내용도 공유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CBDC 상용국이 나왔다. 아프리카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이지리아는 지난달 25일 디지털화폐 'e나이라(eNaira)'를 출범시켰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바하마, 엘살바도르에 이은 세 번째 상용화다.

 

우리나라는 지난 8월 모의실험을 시작했다. 역시 4년 만의 움직임이다. 한은은 현재 10명 가량의 관련 인력이 카카오의 금융계열사인 그라운드X와 함께 CBDC의 활용성과 제반 업무의 정상 동작 여부를 테스트하고 있다. 1, 2단계로 나눠 진행되는 모의실험은 내년 6월까지 진행된다. 한은은 늦어도 2022년 8월 중 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후속 연구의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의 모의실험과 법적 검토 등을 거쳐 CBDC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며, 도입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모의연구 외에도 법적·제도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 쌓여있다. 먼저 CBDC에 법정통화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한국은행법에 근거 규정을 둬야 한다. 불법적인 유통·활용을 막기 위해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하며, CBDC가 현금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 만큼 압류·강제집행·몰수 등 민·형사집행 시스템이 CBDC에도 차질 없이 적용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여기에 디지털화폐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발행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원조차 CBDC 개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며 "한국은행이 올 여름에서야 모의실험에 나선 만큼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관련 법제를 마련하는 데 더해 국민들의 이해도를 올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CBDC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법정 디지털화폐 체계로 편리하게 진입하게 한다는 점은 저소득층의 또 다른 소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조언한다.

 

정순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CBDC는 디지털 환경에 취약한 이용자가 지급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해 경제활동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은행이 신중한 접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적인 시류에 뒤늦게 탑승하는 일이 없도록 시의적절한 움직임과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4년간의 연구가 이제는 의미있는 행보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송민성 한은 디지털화폐 연구팀 과장은 "CBDC의 기술 검토의 경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최근 모의실험을 통해 본격적인 검토에 나섰다"고 말했다.

 

일부 국가가 이미 CBDC 상용화를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주요 선진국들이 아직 개념검증, 모의실험 단계이므로 우리나라가 더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은은 2017년부터 연구를 시작했지만 중국 중앙은행은 우리보다 3년 이른 2014년에 연구를 시작하고도 최근에서야 디지털위안화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한은이 BIS 컨퍼런스, 국제 세미나 등을 통해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활발하게 의견교환을 하는 만큼 CBDC 연구가 뒤처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현 기자 jhgwon1@fe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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