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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문 한투증권 대표가 쏘아올린 '큰 공'

학벌 등 약점 '뚝심·현장경영' 통해 극복

 

[FETV=유길연 기자] “명문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열심히 하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1월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지난 1월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 중)

 

대형증권사 최고경영자(CEO) 절반 이상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다.  증권사만이 아니다. 한 기업평가업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위 500대 기업 CEO 가운데 SKY 출신 비중이 42.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에서 명문대 출신이 아니면 CEO가 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또 증권업은 시장의 흐름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좌우된다. 비인기 부서에서 일하면 그만큼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고속승진을 원한다면 실적이 높은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직이 잦은 증권업계에서 공채 출신이 CEO 자리에 오른 것도 흔치 않다.

 

올해 상반기 증권사 실적 1위가 예상되는 한국투자증권을 이끄는 정일문 대표이사는 ‘명문대 졸업’, '잦은 이직' ‘인기 부서근무'라는 증권업계의 두 가지 성공공식과 거리가 멀다. 비명문대 출신으로 기피 부서에서 경력을 쌓은 정 사장의 성공 비결은 ‘뚝심’과 ‘현장 중심’이다. 이직이 잦은 증권업계에서 30년간 회사를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는 점 역시 눈길을 끈다.

 

정 사장은 단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88년 한신증권에 공채로 입사했다. 한신증권은 동원증권을 거쳐 지금은 한국투자증권이 됐다. 정 사장은 입사 초 시장부에 지원해 근무하다 기업금융(IB)부로 옮겼다. 당시는 기업공개(IPO)나 회사채 발행 등 증권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아 수익을 올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비인기 분야라는 불리함을 이겨내기 위해 철저히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기업 정보를 얻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고객사 방문 시 알고 있던 길을 피해 다른 길로 다니면서 새로운 고객사를 찾았다. 처음 보는 기업 이름은 적어뒀다가 나중에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갔다.

 

이러한 그의 뚝심은 벤처 열풍이 거셌던 1990년대 후반부터 결실을 맺었다. 당시 벤처기업들로부터 IPO 주관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지난 2004년 차장에서 부장을 건너뛰고 바로 상무보로 특진해 증권가의 화제의 인물이 됐다.

 

정 사장은 지난 2004년 투자은행(IB)본부의 주식발행(ECM)부 상무, 2005년 IB본부장, 2008년 기업금융본부장 등을 거쳤다. 2016년 개인고객그룹장으로 옮기기까지 27년간 IB 분야에서 활약하며 국내 최고의 IB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그는특히 IPO 대가로 통한다. 지난 2004년 한국과 미국에 동시 상장한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2007년 삼성카드, 2010년 사상 최대 IPO 기록을 세운 삼성생명 상장은 그의 작품이다. 2005년 상장한 SNU프리시젼(현 에스엔유)은 코스닥 IPO 최초로 해외 투자자를 유치해 주목받았다.

 

승승장구하던 정 사장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그가 기업금융본부를 이끌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쳤다. 수많은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 증권사들은 앞 다퉈 IB 조직을 줄여나갔다.

 

하지만 정 사장은 현장으로부터 습득한 ‘감’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그는 오히려 금융위기 이후 채권담당 부서를 강화했다. 경기가 회복되면 기업의 채권 발행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 판단했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고 채권시장 점유율이 1%가 채 안되던 한투증권은 이후 시장의 강자로 올라섰다.

 

정 사장은 2016년 IB조직을 떠나 개인고객그룹장이 됐다. 이 때도 전국 지점을 돌며 직원들과 소통했다. 이러한 노력은 한투증권의 수탁액 순위를 3위에서 지난해 2위로 끌어올렸다. 수탁액을 늘린 비결은 IB와 AM(자산관리)의 결합이었다. IB 분야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 사장은 공모 부동산펀드 등 대체투자 상품을 앞세워 공격적인 성향의 개인투자자 자금을 모았다. 2017년 11월 시작한 발행어음으로 안정 성향의 투자자 자금도 유치했다. 

 

이러한 실적을 인정받아 CEO자리 까지 올랐지만 취임과 함께 위기는 또 찾아왔다. 정 사장에게 CEO자리 자체가 위기였다. 전임자는 증권사 최장수 CEO 기록(12년)을 세운 유상호 전 사장(현 부회장)였다. 유 전 사장은 한투증권을 실적 1위로 올렸다.  이런 유 전 사장과의 비교는 정 사장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 사장은 주위의 우려를 금방 불식시켰다. 올해 1분기 정 사장은 증권사 당기순이익 1위 자리를 지켜냈다. 2분기 전망 역시 밝다. 업계는 증시 불황에도 불구하고 한투증권의 2분기 당기순익 증권사 1위를 지킬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상반기 부진했던 IPO 주관 실적도 정 사장의 향후 능력발휘를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주요 IPO가 하반기에 몰려있는 만큼 IPO 전문가인 정 사장의 진두지휘가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올 하반기에 정 사장이 IPO 실적 1위를 달성하면 국내 증권사 최초 연 1조원 당기순이익을 달성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